●생전에 명당을 지정 정왕동에 배나루라는 마을이 있다. 한자로는 '이진(梨津)'으로 쓰는데, '진(津)'자로 보아 예전에는 배가 드나들던 포구였던 것으로 짐작이 간다(이곳 촌로들은 그렇게들 이야기함). 그런데 여기 배나루 마을에 원씨(元氏)네 산소가 한 분 모셔져 있는데 여기 얽힌 전설이 전하여 오고 있다. 이야기인즉, 이 마을에 살던 원용필(元容弼)의 12대조(병장호란 때 덕물도에서 순절한 元成模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임) 할아버지에 관한 내용이다. 그 할아버지가 생존하셨을 때 무슨 난리가 일어나 당시 무장이었던 할아버지가 군사를 이끌고 덕물도(지금의 옥구도를 이렇게 불렀다는 설이 있음)에 진을 치고 계셨는데, 싸움의 형세가 어떻게 급변할지 몰라 아무도 예측할 수가 없었다 한다. 할아버지도 역시 같은 생각이셨는지 고향에 두고 온 가족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었으나 그 내용을 적어 인편으로 보내기에는 여러 어려운 사정이 있었다. 그래서 일종의 유언장을 적어 그것을 화살 끝에 매어 덕물도서 이곳 배나루로 향하여 활시위를 당겼다 한다. 덕물도에서 배나루까지는 그 거리가 상당히 멀었는데, 그 화살은 시위를 떠나자 허공을 가로질러 이 배나루까지 날라와 산중턱에 닿았다는 것이다. 이때 그 가족들은 전쟁터에 나가신 할아버지의 소식이 궁금하던 차에 어느 날인가 날아온 화살 끝에 종이 묶음이 달려 있어 풀어보았더니 바로 할아버지의 유언장 내용이었다 한다. 이리하여 덕물도에 머물렀던 할아버지는 소원대로 자기의 생각한 바를 그대로 가족들에게 전달할 수가 있었는데, 얼마 후 난리가 끝나고 할아버지도 무사히 돌아오시게 되어 그때 이야기를 하면서 옛 이야기로 삼았다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그 할아버지가 연만하시어 자리에 눕게 되자 할아버지는 그때 이야기를 회상하면서, "내가 목숨이 다하게 되면 나의 묻힐 자리는 그때 화살이 떨어졌던 곳이니 그리 알고 내 말대로 시행하라." 하면서 아예 당신이 묻힐 자리를 지정하여 주었다. 드디어 할아버지가 운명하자 가족들은 할아버지 분부대로 시행하였는데, 그 후로는 집안이 융성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전한다. 물론 그 화살이 떨어진 자리가 바로 명당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실은 원성모는 승길(升吉), 이길( 吉)과 함께 3부자가 3일간 치열한 전투 끝에 많은 적의 목을 베었으나 중과부족으로 순절하였다. 그후 352년이 경과한 1988년 이곳 일대가 시흥공단 토취구역으로 편입되자 후손들이 본래의 묘에서 서남쪽으로 약 300m 떨어진 곳으로 이장을 한다. 얼굴의 형태며 수염까지도 옛 모습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더욱 놀란 것은 당시 전투에 입었던 속옷과 겉옷은 물론 아래위 관복까지도 하나도 변색되지 않 은 채 원성모가 호병의 칼로 옆구리 두 군데를 맞아 순절, 그 혈흔(血痕)이 관복에 스며 벌겋게 있더라는 것이다. 이를 지켜본 후손들이 한때나마 선조의 유훈을 생각하며 모두들 숙연해 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