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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

화수분 바가지의 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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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0-10-15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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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수분 바가지의 내역
흔히 세간에서 써도 줄지 않는 것을 '화수분'이라고 한다. 

이 말은 옛날 중국의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을 때에 생긴 말이다. 회를 개려면 굉장히 많은 물이 필요한데 일일이 길어다 쓸 수가 없었다. 높은 봉우리 위에다 구리로 큰 동이를 하나 만들어 놓고, 그래서 군사 10만 명을 풀어서 날마다 황하수(黃河水)를 길어다 그 동이에 채우게 하였다. 그러고는 성벽을 쌓을 때 쓰는 물은 그 동이에서 끌어다 쓰게 하니 군사들이 길어다 채우는 물이라 아무리 써도 없어질 날이 없을 것은 물론이었다. 그래서 황하수를 길어다 붓는 동이를 분(盆)이라 하여 '하수분'이라 하던 건데 그 말이 화수분이 된 것이다. 그러니까 하수분 바가지는 이 화수분처럼 써도 줄지 않는... 그런 바가지라는 뜻이다.
옛날 경기도 안산(安山), 지금의 시흥시인 그곳에 유씨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어느 해, 몹시 가물다가 늦게서야 어찌나 큰물이 났던지, 모판을 내다보아야 거둬들일 것이 하나도 없는 무서운 흉년이 닥쳐왔다. 유씨 집에서도 온 식구가 여러 날 굶어 지쳐서, 드러누워 이젠 죽을 날만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날 주인 유씨도 맥을 놓고 아이들이 지쳐 쓰러진 곁에서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고 누워 있는데 부인이 머리에 수건을 쓰고 들어왔다.

 
"아이구 여보, 저꼴들을 어떻게 보겠소? 여기 내 머리를 몽땅 잘라서 이렇게 타래를 매놓으니 이걸 가지고 나갔다 오슈. 쌀이 되든 잡곡이 되는 주는 대로 좀 바꿔다가 저 죄없는 것들이 마지막으로 한 끼라도 달게 먹는 거나 보고 죽읍시다."

 
유씨는 아무 말도 못하고 부인이 시키는 대로 타래와 오망자루를 가지고 집을 나섰다. 그리하여 장에 가서 평소 같으면 상당한 값이 나갈 그 타래를 단지 쌀 석 되에 바꿔 가지고 돌아온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마침 동네 뒤 도랑을 건너려다 보니까, 동네 박서방이란 친구가 얼굴이 누렇게 부황이 나가지고 한 손에 회초리를 들고 개울가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박서방 거기서 뭘 하나?"
"엉? 아무 것도 아냐."
유씨는 기운 없는 중에도 가까이 가보았다. 그랬더니 비실비실 마치 뭐나 틀킨 것처럼 물러나며 역시,
"아무 것도 아냐."
하고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라니?"
하고 바싹 다가가 보니, 오죽해야 그랬으랴마는 개구리를 큰 놈, 작은 놈 잡은 것이 바가지에 그득했다. 이거라도 먹고 목숨을 이어야겠다는 모양이었다.
"에그, 끔찍하고 가엾어라! 여보게나, 이거 쌀인데 자네 이거 나하고 바꾸세."
"아니, 이 귀한 쌀을..."
"아냐, 난 괜찮아."
억지로 쌀자루를 떠맡기고 바가지를 빼앗았다. 그리고 개구리를 하나하나 맑은 샘가에 나란히 엎어 놓았다. 그랬더니 회초리 한 대에 잠깐 까무러쳤던 놈이라 물냄새를 맡고 생기가 돌았는지 한 놈이 툭탁 일어나서 뛰었다.
"옳지 하나 살았다."
유씨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였다.
"옳지! 또 하나, 옳지! 요것도..."
해가 서산에 뉘엿뉘엿할 무렵까지 그 많던 개구리는 거의 다 살아서 뛰어갔다. 영영 살아나지 않는 마지막 몇 마리를 들여다보고는 '너무 호되게 맞아서 아주 죽었나? 혹 밤이슬이라도 맞으면 살아날는지' 하며 끙하고 일어서는데 아까 내던진 바가지가 떠내려가질 않고 거기서 맴돌고 있었다. '이게 왜 떠내려가질 않을까?' 하고 물 복판에 띄워봐도, 그냥 둥둥 떠돌며 흘러내려가질 않았다. '이상도 하다' 유씨는 별 생각 없이 바가지를 집어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굶어 늘어져 있는 아이들 생각을 하니 한심한 노릇이었다. 돌아오는 길로 바자기는 벽장에 던져 넣어두고 아이들이 쓰러져 있는 사이에 끼여서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고 누웠다. 그런데 문이 벌컥 열리더니 부인이 들어왔다.
"쌀 팔아 온 거 어쨌수?"
"으음!"
유씨는 다른 말을 않고 고개만 가로저었다. 방안을 휘이 둘러보고 쌀자루가 없자 부인은 벽장문을 열고 들여다보았다.
"여기 쌀을 갖다 놓고도 괜히 그러셔!"
"무어?"
유씨가 엉거주춤 일어나 앉는데, 부인의 손에는 쌀이 찰찰 넘치게 든 바가지가 들려 있었다. 얼마나 급하였으랴? 부인은 얼른 반을 쏟아가지고 나가서 밥을 지었다.
"거, 밥을 짓지 말고 죽을 쑤. 지금 이 뱃속에 밥 먹었다가 큰일나."
그리고 돌아 나오는데 이런 희한한 일이 있나? 쏟아낸 바가지에 또 쌀이 가득했다. 그날 저녁 두 부부는 마주앉아 상의를 하였다. 필연코 개구리를 살려준 것을 용왕(龍王)이 고맙게 여기고 그랬으라는 것과, 이 어려운 고비에 우리들만 잘 살려고 드는 건 죄받을 일이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밤새도록 둘이서 받아낸 쌀을 이튿날 날이 밝는 대로 동네 집집마다 나눠주었다. 그러고는 흉년 고비를 간신히 넘긴 두 부부는 다시 상의를 했다.

 
"이만큼 은혜를 받았으면 그걸로 만족할 줄 알아야지 제 본분을 생각 않고 욕심을 내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하고 두 부부는 바가지를 고이 씻어 잘 간직해 두었다. 그리고 가끔 들여다보는데 제삿날이면 으레 하얀 쌀이 가득해지곤 하더라는 것이다. 그 뒤 세월이 오래 지나고 난리도 여러 번 치러 이 화수분 바가지의 행방을 알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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