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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연과 용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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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0-10-15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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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연과 용견설
세종 4년(1422) 하연(河演)이 전라도도관찰출척사병마도절제사(全羅道都觀察黜陟使兵馬都節 制使)로 있을 때 남원 중방현(中坊縣) 객사에서 유숙한 일이 있었는데, 꿈속에 어떤 백발신옹(白髮神翁)이 나타나 말하기를,
"제 손자 다섯이 대감의 반찬거리로 잡혀갔으니 죽이지 마시옵기를 바라나이다."
라고 하며 시(詩) 한 수를 주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 시는,
용문산을 아홉 번 오르고 (九登龍門上)
큰 바닷물을 세 번 마셨는데도 (三飮天海水)
아직 용이 되지 못한 이때 (未及成龍時)
장유자라 하는 자에게 잡혀갔나이다. (命付發孺子) 라는 내용이다. 

하연이 놀라 잠을 깨어 좌우를 살펴보니, 그 노인이 간데 없어 너무나 괴이한 일이라 사령들을 불러 명하기를,
"나는 대접하기 위하여 준비해 놓은 물건은 빠짐없이 그대로 대령토록 하여라."
하니, 꿈속 노인의 말에 맞는 물건을 찾았는데, 그 속에 다섯 마리의 잉어가 있었다. 그런데 그 중 한 마리가 생명이 위급하여 서둘러 잉어를 잡아 온 장본인을 속히 찾아오라고 명하자 곧 어부 한 사람이 나타났다.
"이 고장에서 고기잡이로 살아가는 어부 장유자(張孺子)입니다."
어부의 말에 놀란 하연이 잉어를 잡아온 산동(山洞) 못에 지체없이 갖다 넣으라고 명하자 어부가 그대로 시행하였다. 삼일 후 또 꿈속에 백발신옹이 나타나 말하기를,
"손자 다섯을 살려 주시니 고맙습니다."
라는 인사말을 하고, 대감의 소망이 있으면 말하라고 하자, 하연이 본래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 부탁할 만한 소망은 없으나 세상사람들이 용(龍)의 형상을 보고자 하나 용의 형태를 본 사람이 없으니 한번 봤으면 한다고 하자 백발노인이 하는 말이,
"소인들은 용체(龍體)를 보면 생명이 감수하는데 대감께서는 대인이시라 용체를 봐도 무방하리라. 날이 밝으면 곧 산동 못가로 나오시오."
라고 말하며 사라졌다. 날이 밝자 못가로 가니 갑자기 먼 산 그림자가 와 못 전체를 뒤덮고 안개가 자욱이 끼여 지척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가 될 즈음 황룡(黃龍)이 나타나 물속에서 왼쪽으로 굽이치더니 다음에는 오른쪽으로 굽이치다가 마침내 머리를 드러내는데, 머리의 크기가 말(馬)의 머리만하고, 흰 수염에 검은 뿔(黑角)이 있어 한참 동안 익혀 보고 있는 동안에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이러한 연유로 그 고을에서는 어부 장유자의 이름을 가능한 한 거명치 않는다고 하며, 혹 장유자의 이름만이라도 듣고 과거를 보면 그때마다 낙방한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지금도 산동 못가에 가보면 바위 위에 새겨진 글이 수없이 많은데, 그 중에 하연이 쓴 「용흥사(龍興詞)」라는 글과 「용견죽하(龍見竹下)」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또 이 못가에는 호남 일대의 선비들이 건립한 운흥정(雲興亭)과 견룡유적(見龍遺積)의 비각이 있다. 생전에 하연이 지었다는 「용견시(龍見詩)」가 전해진다.


산동의 바윗돌은 크고 높으며 (山洞之石落落)
산동의 푸른 물은 깊고 깊도다. (山洞之水淵淵)                        경재 하연 선생
황국화로 빚은 술 즐거운 이때 (黃花白酒堪樂)
구월이라 가을풍경 장히 좋구나. (正値九月風煙)

 
사람은 풍치를 한껏 누리며, (有人風流)
용은 물위에 기뻐하도다. (有龍)                                          淸州後人 韓磌 撰
내 너를 어찌하고 홀로 즐기랴. (吾於 獨樂)
차운 산 먼 곳의 안개도 상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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