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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교산 전투의 명장 김준룡(金俊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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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0-10-14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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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교산 전투의 명장 김준룡(金俊龍)

○생몰년도: 1586~1642
○조선 중기의 무신. 자는 수부(秀夫), 본관은 원주(原州)이다.
○가족관계: 아버지는 선조 때의 명인(名 人)으로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김두남(金斗南), 어머니는 담양도호부사 김희필(金希弼)의 딸, 부인은 순창 임씨(任氏)로 군자감 주부 임계(任繼)의 딸인데 장군과의 사이에 4남 1녀을 두었다.
○시호: 충양(忠襄).

○생애 

장군의 나이 23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어 관무재(觀武才)에서 장원하여 훈련원 의 주부로 승진되었고 곧이어 법성포수군만호(法聖浦水軍萬戶)가 되었다. 28세에 마량진 첨 절제사에 임명되어 능력을 인정받아 절충장군에 올랐다가 32세에 인동도호부사가 되었다. 2 년뒤 영주군수겸 조방장(助防將)에 제수되어 광해군 폐위로 국가의 기강이 없을 때 치적을 쌓아 옷 겉감과 안감 한벌씩을 하사받았다. 35세에 회령도호부사로 옮겼는데, 특히 인동과 회령에서 수령으로 재임 중 선정을 베풀어 두 곳에서 백성들이 정청비(政淸碑)를 세워주었다.

  51세가 되던 인조 14년(1636)에 전라도병마절도사에 재임 중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관할 군사를 이끌고 청나라 군사에게 포위당한 남한산성으로 진군하면서 곳곳에서 군사를 모아 병력을 보강하였다. 직산(稷山)을 경유 용인의 광교산(光敎山)에 이르러 험준한 산세를 이용, 이를 거점으로 포진하였다. 몽고공경병(蒙古孔耿兵) 수만명이 공격해오자 필사적으로 싸워 청태조의 사위 백양고라(白羊高羅) 등 많은 적병을 사살하였으나 우리의 병력 손실도 커서 장군은 휘하의 기병 수백을 이끌고 수원에 도착, 다시 남하하여 재기를 계획하였다.

  그러나 감사 이시방(李時昉)은 호로(胡虜, 중국 북방의 이민족을 이르던 말)가 두려워 전 란에 참여하지 않아 내심 부끄러운데다 장군의 전공(戰功)을 시기하여 모함하였으나 대신 (大臣) 이성구(李聖求)와 최명길(崔鳴吉)이 "공로는 많지만 실로 죄는 없다"고 극언하여 장 군은 무사하고 이시방은 귀양을 갔다. 뒤에 어영중군(御營中軍), 김해도호부사를 거쳐 다시 영남절도사에 제수되었다. 그 이듬해에 병이 심해져 상소해서 사임하고 병든 몸을 이끌고 십여리를 떠나 관사(館舍)에서 57세를 일기로 객사(客死)했다. 장군의 죽음과 동시에 남방에 서 큰 별이 떨어지자 의정(議政) 김유와 원두표(元斗杓)가 조정에 있다가 그 변고를 듣고 말 하기를 "하늘이여! 남쪽에서 별이 떨어지더니 과연 한 훌륭한 장수를 잃었도다"라고 탄색하 였다. 임금이 특명을 내려 장례를 치르게 하고 치제(致祭)하게 하여 그 공적을 기리게 하였다.  

  장군은 얼굴 생김이 위대하여 어려서부터 보통 아이들과 같지 않아 보는 이마다 장차 크 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평생을 집에 있으면 어버이를 마음을 다하여 섬겼으며 형제간에 우 애하였고, 임금을 섬김에 충성을  다하였다. 도호부사로부터 절도사에 이르기까지 군(軍)으로 서 방어한 지 수십년에 약속을 엄하게 하고 상벌을 신뢰있게 하였다. 재물과는 거리가 멀어 살집이 없을 정도로 궁핍하였다. 즉 죽을 때에 이르러서는 집이 가난하여 장례일을 이웃들 이 치루어 주어 모든 사람들이 장군을 어진 선비라고 하였다. 광교산 전투의 승전(勝戰)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칭찬하자 "이때를 당하여 임금이 이미 욕(辱)되었다. 장병된 신하로 써 성하(城下)에 죽지 못한 것이 죄인데, 다른 것이야 무어라고 말하겠는가"라고 말하며 오히려 전쟁에서 죽지 못했음을 한탄해했다.

 ○
  - 묘와 신도비는 1988년 5월 31일 향토유적 제13호로 지정.
  - 위치: 양천현(陽川縣, 현 서울특별시 강서구 화곡동)의 남산 에 있는 가족묘지에 있다가 1972년 도시화로 시흥시 군자동 산 138-1로 이장.

  - 신도비
건립시기

숙종 11년(1685)

크기

비신의 규모: 높이 1.39m, 폭 0.65m, 두께 0.22m

비문

내용: 우의정 (右議政) 허목(許穆),
글씨 및 전자(篆字): 이조참판(吏曹參判) 오시복(吳始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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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con_arrow03.gif드론 사진


• 출처 : 시흥시, 『시흥의 인물 』,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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