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 문학과 그림에 능한 왕자 영응대군 ○생몰년대: 1434~1467 ○조선시대의 왕자. 자는 명지(明之), 호는 서곡(西谷), 본관은 전주(全州). 세종의 8남 이며, 어머니는 소헌왕후 심씨 ○출생 및 거주: 서울 견지방(堅志坊)에서 출생. ○생애
대군은 8세(1441)에 영흥대군(永興大君), 이어 10세(1443)에 역양대군(歷陽大君)에 봉해졌고, 14세(1447)에 영 응대군으로 개봉(改封)되었다. 대군은 나면서부터 얼굴이 수려하고 품성이 총영(聰潁)하여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 모든 왕자들은 궁중에서 주상(主上, 임금)을 '진상(進上)'이라고 불렀 다. 그러나 세종은 대군에게 전교하기를 "너는 나이 15세 이전에는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고 어머니만은 진상으로 부름이 좋겠다."라고 할 만큼 왕의 사랑이 각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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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세종이 궁궐 밖으로 거동 할 때에도 반드시 대군을 데리고 다녔으며, 궐내에 서도 잠시 떨어져 있지 않았다. 대군이 5세 때 세종이 대군을 즐겁게 하기 위해 인형을 새 긴 영등(影燈)을 만들어 주었는데 불꽃이 인형에 옮겨붙어 곧 타버리게 되자 놀라며 빨리 끄라고 외쳤다. 이에 세종이 그 연유를 묻자 "사람이 상할까 해서입니다."라고 대답하자 세 종이 더욱 기특하게 여겼다. 마음가짐 또한 침정(沈靜)하고 예를 지킴이 공근(恭謹)하여 어 른에게 경순(敬順)하고 인척을 친애하였으며, 사람을 대함에 있어 항상 화기(和氣)가 충만하 였다. 더욱이 노복들이 허물이 있어도 성을 내어 꾸짖는 일이 없을 만큼 인후한 군자와 같 았다.
세종이 죽은 후 문종은 대군이 막내이기에 더욱 아끼고 사랑하여 우애가 다른 아들과 달랐 다. 세조 또한 대군에 대한 보살핌이 돈독하여 항상 궐내에서 인견(引見)하였다. 30세(1463) 에 『명황계감(明皇誡鑑)』의 가사를 한글로 번역하였으며, 또 그림에도 조예가 깊었는데 특히 조수(鳥獸)와 화초(花草)에 능했고 음율(音 律)에도 통달했으나 불행하게도 하늘이 수 (壽)를 주지 않아 34세로 사망했다. 시호는 경효(敬孝)이다. 대군의 원배는 춘성부부인(春城府夫人) 해주 정씨(海州鄭氏)이며, 재배(再配)는 대방부부 인(帶方府夫人) 여산 송씨(礪山宋氏)이고, 삼배(三配)는 연숭부부인(延城府夫人) 연안 김씨 (延安金氏)이다.
○묘 및 신도비
-지정문화재 : 영응대군 묘 및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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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효재 (1995년대)
• 출처 : 시흥시, 『시흥의 인물 』, 2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