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응대군 묘 및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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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0-10-14 13:59본문
●영응대군 묘 및 신도비
○분류: 지정 문화재
○지정 번호: 향토유적 제9호
○지정년월일: 1986년 5월 31일
○시대: 묘-세조 13년(1467), 신도비-연산군 4년(1498)
○소재지: 시흥시 군자동 산70
○배치
묘는 대군과 해주 정씨 및 여산 송씨와 합장이고 그 왼쪽에 연안 김씨의 묘가 자리잡았고, 두 묘 가운데 앞에는 묘비와 상석, 향로석, 장명등이, 그리고 그 좌우에는 망주석과 문인석이 배치되어 있다.
묘 입구에는 대군의 시호명을 취한 재실(경효재, 1969년경 건립)과 사당(경효사, 1997년 건립)이 각각 위치해 있다.
○변천
세조 12년
(1467)2월2일
서울 견지방(堅志坊) 자택에서 사망
이해 3월 19일
양주(楊州) 군장리(郡場里)에 예장을 치른 후
연산군 4년
(1498)
신도비를 세웠다.
광무 4년(1900)
9월 17일
첫 부인 춘성부부인(春城府夫人) 해주 정씨(海州鄭氏)와 둘째 부인 대방부부인(帶方府夫人) 여산 송씨(礪山宋氏)의 묘를 현 위치로 천장.
1968년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에 있던 셋째부인 연안부 부인(延安府夫人) 연안 김씨(延安金氏) 및 아들 청풍군(靑風君)과 손 화림정(花林正), 그리고 증손 흥선부정(興善副正), 흥정부수(興貞副守)의 묘를 옮겨 봉안
●신도비
위치
묘에서 동남쪽으로 약 50m 떨어져 있음.
비신의 크기
높이 1.45m, 폭 84cm, 두께 21cm
형태
기단석 대신에 귀부 위에다 비신을 세웠고, 다시 그 위에 옥개석 대신에 이수를 얹어 놓았다.
비문
도승지 임사홍(任士洪)이 짓고 아울러 전액(篆額)했음.
글씨-기위부사정 박경(朴耕)이 썼다
비면-『永膺大君 神道碑(영응대군 신도비)』란 전제(篆題)와 『有明朝鮮國 永膺大君諡敬孝公神道碑銘(유명조선국 영응대군시경호공신도비명)』이란 비제(碑題)가 새겨져 있다.
기타
1992년에 신도비의 보호철책을 세웠다.
시내
30-7·60·61·76, 구지정
아랫말 하차
동쪽으로 5분(경효재 동북)
문의:(지역번호:031)
310-6706(향토사료실)
310-6703(문화예술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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