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조벌(戶曹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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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3-03-24 16:19본문
사진제공 : 시흥시청 향토사료실
호조벌을 탄생시킨 것은 바다를 가로막은 제방인데 바로 호조방죽이다. 호조방죽은 시흥시 포동 걸뚝에서 하중동 돌장재를 잇는 길이 약 720m의 인공 둑이다. 개펄이었던 이곳에 1721년(경종 1년) 둑을 완공하여 농경지로 개간하였다. 이 둑은 과거 인천과 안산을 연결하는 교통로 구실을 하였으며, 지금도 국도39호선이 제방 위로 통과하고 있다.
명칭 유래
호조벌은 호조들이라고도 하며, 이 들판을 만든 주체가 조선시대 국가 재정을 담당하였던 호조(戶曹)와 관련 있는 진휼청(賑恤廳)이었기에 호조에서 만든 벌판이라는 의미로 불리고 있다. 이렇게 행정 기관인 호조와 연관성이 깊은 기록들이 있는데, 『일성록(日省錄)』 1794년(정조 18) 11월 16일 기록에 “인천과 안산 사이에 옛날 호조에서 만든 수백 석이 나오는 방죽 논이 있는데, 지금은 화성에 소속되어 있다[仁安之間舊有戶曹堰畓屢百石種今屬華城].”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호조벌 외에도 석장평(石場坪), 인천안산언답(仁川安山堰畓) 등 다양한 호칭이 있었지만, 지금은 이런 명칭을 거의 쓰고 있지 않다.
자연환경
경기도 북서부에 있는 시흥시의 지형은 북쪽으로 높이 299.4m의 소래산이, 서남쪽으로는 높이 198.4m의 군자봉이 있다. 동북쪽으로는 산악이 형성되어 있고, 동쪽 접경 지역은 경사도 중급의 임야 지대이다. 시의 대부분 지역이 평지 또는 경사도가 완만한 구릉 지대와 평원을 형성하여 농경지를 이루고 있는데, 이 들판을 호조벌이라고 부른다.
조선시대의 호조벌은 지금과 같은 시흥시의 중심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정구역상 인천부 신현면[지금의 시흥시 신현동]과 안산군 초산면[지금의 시흥시 연성동]의 경계를 이루는 접경지에 소재하고 있었다. 호조벌을 관통하는 포오천(浦吾川)[보통천]을 중심으로 북서쪽은 인천, 남동쪽은 안산의 관할 구역이었다. 이후 수차에 걸친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1973년 7월 1일 부천군 소래면이 시흥군에 편입되면서 지금처럼 호조벌이 행정구역상 시흥시의 중심부에 자리 잡았다.
현황
호조벌을 농경지로 만든 목적은 초창기에는 경작지 확보뿐 아니라 홍수와 가뭄을 극복하는 물 관리가 핵심이었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1725년(영조 1) 8월 9일 기사에 “지금 옛 갯골에 잇닿아 농수로를 순조롭게 하고, 백성을 모아 권농하며, 개간해서 논을 만드는 것이 가장 급선무가 됩니다[今則濱其舊浦 使水道順利 聚民勸農 開墾作畓 最爲緊急之務].”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런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물 관리는 근현대에 들어와서는 소래저수지·매화저수지·흥부저수지 축조로 이어지며, 1970년을 전후로 시행한 경지 정리 사업을 통해 호조벌에서 안정적인 농업 활동이 이루어졌다.
호조벌은 약 150만 평[약 4.96㎢]의 넓이에 달하는 시흥시 최대의 곡창 지대로, 지역의 특산미인 ‘햇토미’가 여기서 생산되고 있다. 과거 농업 사회에서는 시흥의 식량창고 역할을 수행해 왔으며, 앞으로는 호조벌 자원 생태화 계획에 따라 시흥 시민에게 생명과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시켜 주는 장소로 큰 의미를 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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