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석 護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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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0-10-15 14:45본문
●호석 護石
봉분(封墳) 주위의 지대석(地臺石) 위에 여러 개의 돌기둥을 세워 난간을 둘러친 시설을 한 능침(陵寢)제도.
이것은 한국의 독특한 형식으로, 삼국시대부터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것으로 가장 완전한 예는 신라 통일기 이후의 것으로, 흥덕왕릉(興德王陵) ·경덕왕릉(景德王陵) ·김유신묘(金庾信墓) ·괘릉(掛陵) 등이며, 돌담에 속석(束石)을 두르고 있다. 그 돌면에는 각각 방위에 따라 십이지(十二支)의 초상을 조각하였으며, 돌벽 위에는 헌석(軒石)을 얹어서 봉토(封土)를 받치고, 아래에는 지복석(地覆石)을 놓아 기대(基臺) 장치를 하였다. 이와 같은 호석은 고려시대의 능묘에서도 볼 수 있는데, 신라의 것을 답습한 것이다.
호석 장치의 계통은 고구려 고분(平南大同郡湖南里四神塚)과 백제 고분(扶餘陵山里)에 절석(切石)으로 주위를 둘렀고, 고신라(古新羅)의 고분에서도 자갈을 쌓아서 담을 두른 예를 볼 수 있다. 이러한 호석은 봉토의 붕괴를 방지하고, 외부로부터의 침해를 막는 데 그 뜻이 있었을 것이다. 신라통일기 이후부터는 분묘의 미화 장식의 의미가 더하여졌고, 십이지신상과 같은 것은 주술적(呪術的)인 봉토를 수호 보전하려는 의미를 가졌다. 이 호석에 대해서는 《국조오례의》 흉례(凶禮) 치장(治葬) 조목에 있으며, 한국의 많은 왕릉과 명신의 묘에는 대개 호석을 둘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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